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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팟캐스트가 2회 만에 종영을 맞은 이유

“386 까도 되고 문재인 지지자들 까도 되냐. 그게 국민TV에서 가능하냐”

  • 백승호
  • 입력 2018.03.26 17:41
  • 수정 2018.03.26 18:01

″너만 기분 나쁘라고 하는 방송”

국민TV에서 팟캐스트 하나를 론칭했다. 방송의 제목인 <까고 있네> 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기존에 비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비판하고자 했다. 방송 내용을 들어보면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천하제일 나쁜 놈‘이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386이다. 20대 30대에게 누가 제일 나쁜 놈일까 생각해봤을 때, 홍준표나 김무성이 만들고 있는 논리나 정치적 세력은 논외의 대상이다. 신경도 안 쓴다. “우리가 민주화를 일으켰다”를 가지고 지금까지 그 자리에 앉아서 콘크리트치고 사다리 걷어차고 있는 분들이 가장 나쁜 놈들이 아닐까. 대표적으로 유시민처럼 ‘나는 정의롭고 맞는 말만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개인이 되지 못한 개인들이 적폐다. 우린 다 개인이다. 그런데 무리를 지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거나 내 무리 밖의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사람들. ~빠, ~사모 이런 자기의 정체성을 타인을 통해서만 확인하는 사람들이 미래의 적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바뀐 게 별로 없다. 노동 문제, 여성 문제, 성 소수자 문제 등...촛불집회를 촛불 혁명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혁명이 아니라 본다...혁명은 혁명 다음 날이 중요한데 다음 날 아무 변화도 없었다”

″적폐라는 말을 박근혜가 유행시키고 적폐 당하셨는데 적폐라는 말을 쉽게 이야기한다. 적폐는 나쁜 짓을 한 사람, 그런 집단을 콕 짚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쌓여있는, 나도 모르고 쟤도 모르게 잘못하고 있는 기원이 어디 있는지 모를 만큼 오래된 잘못이다.”

″최승호 사장이 오자마자 배현진이 대기발령 받았다. 최승호는 부당해고를 받았던 사람이다.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 지금이 정상이라고 하면 누군간 이걸 비정상으로 보지 않겠나?”

″언론권력이라고 말을 하는데, 정권이 바뀌고 주류 소비층이 바뀌면서 거기에 복무하면 권력이 되는 것 같다. 복무를 하며 권력을 하는 형용모순이다. 이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방송은 2회 만에 폐지됐다. 이사회는 제작진에게 폐지 이유를 ‘이사회의 결정 상황’이라고 통보했다.

 

이 팟캐스트가 ‘만들어진’ 또 ‘삭제된’ 이유

이 팟캐스트에서 나온 말들은 ‘돌출 발언‘이 아니다. <까고 있네> 기획자인 성지훈 기자는 ”국민TV가 새로운 세대, 더 젊은 조합원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방송을 기획했다”고 전한다. 국민TV는 거칠게 보자면 대한민국에서 ‘진보적 미디어‘에 속한다. 성 기자는 소위 ‘진보’와 ‘보수’로 형성된 기존의 정치지형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3지대’가 필요하다. 기존 정치지형에서는 ‘진보’에도 ‘보수’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 사안에 따라 그 둘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혹은 진영논리에 지치거나 현실 정치 전반에 불만을 갖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속내였다.

ⓒFrank Peters via Getty Images

출연자 최황 씨는 성지훈 기자와의 사전 미팅에서 “386 까도 되고 문재인 지지자들 까도 되냐. 그게 국민TV에서 가능하냐”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 성 기자는 ”지금 조합원들 절대다수가 386이고, 노무현 문재인 지지자들인데,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포맷으로 방송을 만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디어협동조합도 새로운 세대의 조합원이 유입될 수 있어야 돌아갈 것 아닌가”라며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세대의 언어를 구사하겠다는 게 목표다. 애초에 이 방송의 주 청취 층을 2030으로 잡으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기획서에서도 반영된 이야기다. <까고 있네> 는 ‘성역 없는 비판’이 콘셉이었고 기획안은 무리 없이 통과됐다.

두 차례의 방송이 나간 뒤 이사회가 긴급 소집됐다. 그리고 17일,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 올라간 두 편의 방송이 모두 삭제됐다. 국민TV 이사회 측은 삭제 후 나흘이 지난 21일, “출연진의 급진적이고 왕성한 비판활동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방송내용이 국민TV의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업로드 중단 및 삭제 이유를 밝혔다.

이사회 측이 밝힌 내용을 좀 더 간략하게 말하자면 <까고 있네> 출연진들의 ‘우리 편 비판’을 수용할 수 없고 그 이유는 ‘조합원들이 싫어하기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사회는 “방송에서 언급된 김어준, 김용민, 이상호, 최승호, 유시민, 386세대, 민주당, 정의당 등은 각자 처한 위치와 환경이 다르고 정치적 입장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지난 9년간 언론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한 세력의 척결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심정적으로 연대해온 분들”이라며 “국민TV는 이분들에 대한 급진적인 비평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업로드 중단조치의 배경… 무엇보다 국민TV의 근간인 조합원들이 조합을 등지는 상황을 막아보자는 자구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성역 없이 비판하겠다’던 팟캐스트 <까고 있네>는 첫 번째 성역도 넘지 못하고 그대로 방송 2회 만에 폐지되었다.

 

출연진, 제작진, 그리고 국민TV 노조의 반발

출연자들은 방송중단 즉시 반발하고 나섰다. 출연자 권용득 씨는 “제작진이 방송 출연 제의를 했을 때, ‘세상에 까지 못할 것은 없다’라는 기획의도가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제작진 입장에서 나름 ‘새로운 시도’였다”고 방송에 합류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까고 있네’ 기획은) 관계자들에게는 ‘새로운 조합원’이 필요했던 셈이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환경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는 얘기다”라고 언급한 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존 조합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차원의 새로운 시도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출연진들은 방송중단사태 이후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386이 어떻게 지위를 만들고 어떻게 서로를 묶어 거대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는지, 어떻게 그 세대성을 권력으로 사용했는지를 살펴보면, 현재 미디어협동조합-국민TV의 행태가 그 전형적 모델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이 싸움은 도저히 대충 할 수가 없다”고 언급했다.

제작진들도 문제를 제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작진은 이 문제가 자기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TV 전반의 제작환경과 직결된 문제라고 여겼고 바로 노조 차원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언론노조 국민TV 분회는 “이사회는 스스로 국민TV의 정체성을 “심정적으로 연대해온 분들은 비판할 수 없는 방송”으로 규정했다”며 이사회의 입장을 “일종의 ‘언론 포기 선언문’”이라고 이야기했다.

ⓒlapandr via Getty Images

노조는 이어 “언론의 비판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국민TV를 지탱하고 있는 조합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김어준, 김용민, 유시민, 386,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어느 집단과 개인도 예외일 순 없다”고 말한 뒤 “이번 사태에서 4대강 사업에 관한 의혹을 보도하려다 방송이 보류된 PD수첩을 떠올리는 것은 오바인가?”라고 되물었다.

노동조합은 “이번 이사회의 ‘만행’을 명백한 단협위반으로 인식한다”며 책임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진심 어린 사과를 요청했다. 사측이 응답하지 않을 경우 단체협약을 어긴 사측을 고발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방송 삭제, 그 이후에 나타난 문제

노조의 강경한 입장과 출연진의 잇따른 비판에도 국민TV 이사회 측은 입장을 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사회 측은 애초에 ‘조합원의 반대’를 삭제 이유로 든 것과는 달리 지금은 ‘방송에 허위사실이 있다’며 ‘방송 자체가 함량 미달’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삭제에 대한 명분이 부족했는지 입장을 바꾸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제작진에 따르면 이사회는 여전히 ‘조합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언론노조 국민TV분회 사무국장은 “26일 아침 이사회가 제작진을 찾아 ‘출연자의 섭외 계기’ 등을 물었고 또 현재 ‘조합원이 탈퇴하고 있고 조합비가 줄어들 수 있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고 전했다.

국민TV노조는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노조는 이를 <까고 있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TV 제작국 전체의 문제로 인식했고 제작국 전체의 뜻이 담긴 성명을 냈다. 그러나 상임이사는 제작국 노동자 개개인을 찾아 “당신의 의사로 동의한 것이 맞냐”고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TV분회 사무국장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사상검증 하듯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 같은 사태가 민주, 진보, 대안을 말하는 조직에서 나온 일이란 게 더 큰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TV

 

국민TV의 ‘협동조합’ 정신

국민TV는 2012년, 언론의 색채가 보수 여당(당시 새누리당)으로 기울어 있는 상황의 반작용으로서 탄생했다. 국민TV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치권력, 자본권력, 수구족벌언론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정방송, 공정언론을 지향하는 국민TV”라고 소개하고 있다.

국민TV는 광고를 수주하지 않는다. 배너광고 정도가 전부다. 광고 없이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운영의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합비를 낸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도 ‘이사회‘가 아닌 ‘대의원 총회’다.

국민TV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언론협동조합의 장점’으로 “회사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정치권력과 결탁할 필요가 없고, 자본권력에 기대 언론사로서의 자존감과 양심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사주의 이익을 위해 언론의 힘을 그릇되게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들은 협동조합의 모델이 ‘성역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까고 있네> 폐지 사태를 돌아보면 ‘돈을 내주는 조합원’이 성역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니 어쩌면 ‘까고 있네’라는 방송이 폐지된 사태가 아니라 그 기획안이 등장한 배경부터 그런 성역이 존재함을 강력하게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TV는 자사의 설립 취지에 대해 “상업적 목적에 의해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양질의 콘텐츠,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언론, 지식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하는 강력한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해 왔다”며 이런 미디어 환경을 조성해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미디어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국민TV가 <까고 있네>의 폐지 이유에 대해 ‘조합원의 반대’를 들 수 있는지 고민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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